2010년 2월 22일 월요일

나쁜 사마리안인들 - 김재용님

정말 잘 쓴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 중이었다. 한 동기가 이 책을 가지고 있기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읽었냐고 물어봤더니 아직 읽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좌파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내 경고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 흔한 도표나 테이블도 없는 책이다. 흥미 위주로 지어지고 편집된 판타지 소설조차도 삽화 등으로 지면을 채우는데, ‘나쁜 사마리아인들’에는 오직 글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한 장을 다 읽기 전에는 책을 놓을 수 없었고, 매우 독특한 다음 장의 제목들은 판타지소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은 분명 경제학 서적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경제학에 대한 제반지식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공대를 졸업한 내가 두 번이나 탐독했으니, 인문학 전공자에게는 얼마나 더 쉽게 다가갈 것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만의 경제학 이론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과거의 경제학 이론에 대해서 장황하고 어렵게 설명하고 있지도 않다.


저자가 경제학 이론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경제학 서적이 아닌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된 주장을 핵심만 추려 가장 쉬운 언어로 간단하게 풀어 설명한다. 수식이나 도표가 전혀 없는데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리인 문제’나 ‘무임승차’ 등의 용어도 쉽게 풀어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이렇게 친절한 저자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혹자가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습인 ‘넌 이 수식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 말이 맞는 말이야!’와 같은 태도는 이 책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들어주는 예에는 그의 10살도 안 된 아들까지 있다. 그 어떤 작가보다 독자의 이해에 초점을 맞춰 글을 구성해 나갔다고 생각한다.


경제학 서적에 속해 있지만, 이 책은 역사학 책이기도 하고, 인류학 책이기도 하다. 작가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조사를 통해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과거 학술자료에서 언급된 선진국과 개도국들에 관한 언급, 그들이 사용한 논리, 당시의 기사, 공식적인 통계치 등을 수집했음은 물론, 기록되지 않은 통계에 대한 추정치까지도 끄집어냈다. 주석만 모아 놓은 부분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니 그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추측할 수도 없다.


이 책이 정말 잘 쓰였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방대한 자료를 자신의 논리전개에 완벽하게 배열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치밀한 작전으로 잘 조직된 수비를 무너뜨리고 골네트를 흔든 슛이 주는 쾌감이 1이라면, 이 책의 치밀함에 감탄한 정도는 100이 넘는다. 이 책이 출간되고 책의 내용에 심기가 불편한 학자들이 지금 경제학계의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출판 후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이에 대적할 만한 서적에 대한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조사내용의 정확성과 글의 구성에 대해 또 다시 큰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다. 저자가 머리말에 밝히는 바에 따르면, 그의 아내가 영감을 많이 주었기에 작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때문에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이런 명저의 탄생이 가능하게 해준 그 아내 분께 나 또한 감사할 지경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설명하고 자료로 답한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는 증거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과거 선진국이 성장했던 방법을 개발도상국에 허용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책에는 좌파라고 규정하여 빨간 딱지를 붙일 정도의 내용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온도서로 선정됐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장하준 교수와 같은 학자가 한국에서 후진을 양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의 경제학계에 얼마나 많은 이슈가 던져지고 얼마나 많은 발전을 가지고 올지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이 책이 지적인 쾌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 독후감의 머리에서 밝힌 입사동기에게 전한 한 마디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의 탄생에는 분명 엄청난 노력이 투입됐을 것이다. 작가는 철저하게 실증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공대를 졸업하여 경제학에 기웃거린 적인 없는 나조차 읽을 수 있을 만큼 되도록 쉬운 언어만을 골라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장기간 경제학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려운 주제일수록, ‘쉬운 언어’란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복잡한 것을 쉽게 설명하는 것은 한 차원 높은 이해의 토대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정말 잘 쓴 책이다.


과거 해리포터라는 소설이 주목받기 시작할 때에, 그 책이 책이란 걸 도저히 가까이 하지 않던 어린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이 경제학이란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기회비용’이나 ‘희소성’ 정도의 쉬운 용어만 대충 설명하고 있는 가벼운 경제학 서적에 만족하고 있던 독자들에게, 해리포터와 같은 큰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장하준 교수는 ‘넌 이 수식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 말이 맞는 말이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임을 확신한다.


이 독후감이 아직 이 책을 읽지 않고 도전해볼까 고민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하기 전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 정도 교양수준이면 이런 책쯤 쉽게 이해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부담 없이 책을 들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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